<원미동 사람들>  /  지은이 : 양귀자  /  살림


세상에. 이게 도대체 언제적 유명하던 책인데 이제서야 읽다니!
어릴 때부터 제목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으나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는데,
확실히 나이가 드니 취향이나 관심사가 바뀌긴 하나 보다.
머, 물론 누군가의 강력추천이 그 동기가 됐긴 했지만서둥...




"그들에게 있어 인생이란 탐구하고 사색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몸으로 밀어가며 안간힘으로 두들겨야 하는 굳건한 쇠문이었다."
   p306


'원미동 사람들'은 제목 그대로,
원미동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11편이 담겨있는 연작소설집이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서울에서 떨려나 원미동으로 이사오는 은혜네 가족이었다가,
겨울에는 연탄배달, 여름에는 각종 공사일로 힘겹게 일하지만 가난을 면할 수 없는 임씨였다가,
실직으로 어쩔 수 없이 영업직에 뛰어들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는 진만이 아빠였다가,
평생 호스티스로 일했으나 결국 찻집에 딸린 초라한 방에서 살고 있는 찻집여자였다가 하면서
원미동에 살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보여준다.


"그녀가 원미동으로 오기 전까지 몇 안 되는 피붙이들이 번갈아가며 돈을 뜯어갔다.
그녀가 술집을 전전하며 지내는 동안 가족들은 당연히 살기가 수월했다.
돈이 좀 모아지면 그 돈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꼭 나타나더라고,
어차피 남 좋은 일 시키려고 태어난 팔자는 다른 모양이더라고 여자는 말했다.
젊음을 바쳐 그들을 도왔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잘 살고 있지는 못하였다.
한 여자의 젊음만으로는 역부족인 게 가난의 끈질김이었다."  
p214




담담하면서도 때론 우습게 묘사되고 있지만,
삶의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살아나가는 고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왠지 애틋하다.
특히 '지하생활자'의 주인공 청년이 화장실이 없는 싸구려 지하방에 세들어 살면서
밥 먹는 것보다 더 치열하게 똥 쌀 곳을 찾아헤매는 모습에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밤이면 온 동네의 문들이 잠기고 새벽마다 똥이 마려운 청년은 결국
으슥한 골목에서 문제를 해결한다. 마치 개처럼...
인간다운 삶의 한 조건으로 배설행위가 포함되고,
그것도 돈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던 터라, 꽤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저도 사람인데 또 싸겠습니꺼. 주씨의 걸걸한 음성이 또 한 번 그의 얼굴을 달아오르게 하였다.
사람 노릇을 못 하게 한 자가 누구인가. 그는 배를 움켜쥐고 앉았다. (......)
낮동안엔  그렇게도 안 나오던 것이 왜, 하필 이 방안에만 들어오면 용틀임을 하는지,
그는 자신의 알 수 없는 뱃속 때문에 한없이 절망하였다." 
  p284


11편의 이야기에 보여지는 원미동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단 남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그들과 대비되는 존재로 등장하던 공장 사장이라든가 집주인도
결국 모두 그만큼의 삶의 무게를 힘겹게 짊어진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모습은 싸우고, 절망하고, 꿈꾸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인 것이다.


"잠깐 사이 후각은 마비되고 언제 냄새가 났었냐는 듯이 코는 말짱해져 큼큼거리던 것도 멈추었다.
내맡겨지고 길들여지는 일에 익숙한 자들에게는 못 견딜 일이라곤 별로 없는 것이다."
   p190




전체적으로 극적인 전개는 없지만, 옆동네를 몰래 들여다보듯이 술술 읽히는 책이다.
그냥 조금은 구질구질하고, 조금은 서글프고, 조금은 쓸쓸하고, 조금은 우스운,
별 특별하달 것도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 묘한 울림이 있다.
양귀자님의 섬세한 문장들도 맘에 들었고.
(국내작품일 경우의 최대장점은 역시 번역을 통하지 않은 원래 문장을 고대로 즐길 수 있다는 거!!)

그나저나 꽤 오래 된 시절 얘기라 그런지,
아무리 작은 동네라지만 이렇게 서로 서로 다 알고 지내는 모습이 내겐 좀 낯설다.
아파트에 살면서 바로 옆에 딱 붙어있는 옆칸에 사는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처지라.....^^;;;
흠.... 혹시 나만 너무 무심한 건가....?-_-?


"돌고 돌아서 돈이라고? 돌고 도는 돈 본 놈 있음 나와보래!
우리 같은 신세는 평생 이 지랄로 끝장이야.
돈? 에이! 개수작 말라고 해."
   p168

 

 

 

* 12.12.23. 위의 책은 절판되고 아래 새로운 표지의 개정판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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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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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날아라! 도야지 2009.10.26 22: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책으로 읽어보진 못했지만, 영화화 된 소설이라고 해서 낯이 익네요..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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