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게>  /  지은이 : 미치오 슈스케  /  옮긴이 : 김은모  /  북폴리오




그간 포스팅에서 꽤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미치오 슈스케'는 내가 좋아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사실 정말 좋았던 것은 맨 처음 읽었던 <해바라기가 피지 않는 여름> 한 권 뿐이고,
그 후에 읽은 작품들은 내 기대치가 너무 높아져서인지 살짝 실망감이 없지 않았는데,
그래도 역시 나는 그의 어딘지 애잔하고 쓸쓸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이번에 읽은 <달과 게>는 드디어 그가 나오키상을 거머쥔 2011년 수상작이기도 하고,
비록 강렬한 미스터리는 아니지만 어쩐지 <해바라기가 피지 않은 여름>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라
아주 마음에 든다.

미스터리가 아닌 '미치오 슈스케'의 소설이라니, 조금은 낯설었지만,
좋아하는 작가가 단지 서술트릭을 이용한 미스터리에만 능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서 기뻐.ㅎ

소년의 성장통을 다룬, 그립고 아프고 무섭고 슬픈 이야기.
하지만 어쩐지 이미 어른인 내게도 묘한 위로를 준다.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내용이어서가 아니라, 음,,, 머랄까,,,
굳이 표현하자면, '애든 어른이든, 원래 사는 게 다 그런 거야.'라는 느낌...?^^;;;




이야기의 중심은 초등학교 5학년인 세 아이.

암으로 아빠를 잃은 신이치
(cancer)에 관한 다큐를 본 후, 게(라틴어로 cancer)가 아빠를 먹어치우는 환영에 시달리고,
유일한 친구인 하루야는 아빠에게 늘 매를 맞고 밥을 굶는다.
그리고 신이치의 할아버지가 모는 배의 사고로 엄마를 잃은 나루미가 있다.

신이치는 어느날 엄마가 나루미의 아빠와 사귄다는 사실을 알면서
엄마를 뺏길 것 같은 불안감, 아빠에 대한 배신감 등이 뒤섞인 분노를 품게 되고,
친구 하루야와 함께 소라게를 불로 지져 죽이며 소원을 비는 것만이 유일한 낙이 된다.

신이치와 하루야는 처음에는 작고 별볼일 없는 소원을 빌었다가,
그것이 이루어지자 조금씩 그 수위를 높여가고,
사실은 서로가 상대방의 소원을 몰래 이뤄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말하지 않는다.
그리고 마침내 신이치는 하루야 앞에서 무서운 소원을 빈다.


"나루미네 아빠를. (......)
이 세상에서 없애 주세요."  
p363




엄마에 대한 신이치의 복잡한 감정은 둘 사이에 나루미가 끼어들고,
나루미와 하루야가 가까워지면서 하루야에게도 비슷하게 적용되는데,
신이치는 하루야를 좋아하지만, 경쟁심, 질투 등이 범벅된 혼란한 감정을 갖게 된다.


"가슴 안쪽에서 하루야에 대한 감정이 욱신거리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감정인지는 스스로 생각해도 분명하지 않았다.
다만 신이치는 계속해서 하루야와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
방과 후의 시간을 이렇게 함께 보내고 싶었다.
딸기를 사거나, 숨을 헐떡이며 산길을 오르거나, 불쌍하다고 여기거나 여겨지고 싶었다.
서로 간에 사실은 알면서도 말없이 넘기는 뭔가를 더욱더 가지고 싶었다."  
p142


유년기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심리상태가 굉장히 은근하면서도 섬세하게 표현되어서
읽다보면 왠지 가슴 한 쪽이 쿡쿡 쑤시기도 하고,
모호하게 남아있던 내 유년의 기억 덩어리가 울컥 올라올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미스터리 작가였던 만큼 나름 작은 반전도 있고,
시종일관 무슨 일이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흐르는데,
특히 소설 후반부에 신이치가 나루미 아빠의 죽음을 소원으로 빈 후,
집에서 부엌칼을 훔쳐 소원을 빌던 바위 뒤에 가져다 두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는
살짝 호러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져서 긴장감이 절정에 이른다.




어린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면서 겪는 성장통에 관한 이야기지만,
고통스럽게 성장하는 세 아이의 이야기를 동정어린 시선으로 따라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이것이 현재 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아빠의 폭력을 참다 못 해 결국 달려든 하루야가,
비굴하고 겁먹은 아빠의 모습을 본 후 신이치에게 하는 한 마디에 묘한 위로를 받는다.


" - 어른도 약하다카이.

그것이 어찌할 도리도 없이 슬픈 일이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p403


성장통은 이미 어른인 우리에게도 여전히 존재하고,
삶이란 건 그저 끝없이 성장해나가는 과정은 아닐런지...
어쩌면 우리는 방황을 끝낸 것이 아니라, 끝낸 척 하는 방법을 터득했을 뿐인지도 모른다.
상처받지 않는 것처럼,,, 참을 수 있는 것처럼...

고의는 아니지만 타인을 죽음으로 내몰고 한쪽 다리를 잃은 신이치의 할아버지도,
남편을 잃고 시아버지와 어린 아들을 부양해오던 신이치의 엄마도,
마찬가지로 부인을 잃고 홀로 어린 딸을 키우던 나루미의 아빠도,
경제적인 고통을 아들에 대한 폭력으로밖에 해소하지 못 했던 하루야의 아빠도,,,
사실은 모두 게껍질을 뒤집어쓰고 상처를 숨기고 있었을 뿐일 것이다.


"내, 계속 생각했는데, 소라게는 우짠지 신기한 것 같지 않나?
껍데기는 언제쯤부터 필요한 거겠노? 얼라 때는 전부 껍데기 같은 건 안 갖고 있다 아이가.
그래서 전부 이래 쌩쌩 헤엄쳐 다니는 거겠제?
껍데기를 짊어지믄 어느 정도 안전할지도 모르지만, 대신에 전혀 헤엄 몬 친다 아이가.
어느 쪽이 좋겠노? (......)
내도 얼라 때는 이랬다.옛날 사진 보믄 말이다,
어느 걸 봐도 상처 같은 건 전혀 엄꼬, 억수로 기쁜 듯이 웃고 있다이까."  
p352-353


어른이 되고,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건 이렇게나 아프고 무서운 일인지...
어쩌면 우리는 여전히 소원을 빌 소라게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아, 근데 역시 난 살아있는 소라게를 불로 지져 죽이는 짓 같은 건 절대 못해!-_-;;;)


"어른이 되는 건 정말 어려워."   p397-398



* '미치오 슈스케' 작품 모음!!

* 아래 링크를 통해 구매하시면 1%의 알라딘 추가적립금을 받으실 수 있어요~^^
(익월 15일 자동지급, 링크 도서가 1권이라도 포함된 해당 주문건 전체에 대한 1%)



Posted by 블랑블랑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지란양 2011.03.29 10: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개인적으로 일본 소설은 1Q84로 처음 접해보았는데 달과 게도 꼭한번 보고 싶네요~

  2. 제드™ 2011.04.11 0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블랑님 리뷰는 내용과 감상이 적절이 섞여 있어, 읽고 나면 책에 대해 더 알고 싶고 보고싶어지는 것 같아요. 달과 게는 찜해놓고 있는 책인데, 조만간 저도 읽어봐야겠어요. ^^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 블랑블랑 2011.04.11 16:5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앗,,감솨합니당~^^
      이거 좀 심심하다는 사람도 있던데 전 좋았어요.
      '미치오 슈스케' 특유의 분위기가 흠뻑 담겨있는 아픈 성장소설이에요.^^

  3. 유선♪ 2011.05.25 17: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잘 보고 갑니다.
    저도 이 책 재밌게 잘- 읽었고 분명히 좋은데, 읽고나니 묘하게 우울해졌어요.


Statistics Graph

최근에 달린 댓글

달력

 « |  » 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