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카타케 나나미'의 <나의 미스터리한 일상>을 누가 빌려달라고 해서 들고 나왔는데,
들고 나온 김에 다시 들춰보니,
전에 읽으면서 주인공의 여유자적한 생활을 부러워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잠에서 깨어 보니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겁고 달콤한 잠의 여운을 하품으로 쫓아내고, 세수를 한 다음 저녁거리를 사러 나갔다.
가지와 푸른차조기, 무, 그린아스파라거스, 그리고 브로콜리, 캔맥주 두 개를 샀다.
이어서 상가 한복판에 있는 헌책방에 들러 국내 미스터리 두 권."   p62



그러니까 이런 거.
느즈막히 일어나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오는 길에 헌책방에 들러서 미스터리 소설을 사고... 훗~

그렇다고 이 주인공의 팔자가 늘어져서인 건 절대 아니다.



  "취직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과로 탓인지
 가끔씩 심한 기침발작이 일어나는 기이한 병에 걸렸다.
다행히 한약과 노송욕조 목욕이 체질에 맞아 꽤 좋아지기는 했지만,
직장에 복귀하면 도로 아미타불이 될 염려가 있다.
어차피 직장에 별 미련은 없었으므로 깨끗하게 그만두고 우선 3개월 정도 느긋하게 요양하기로 했다.

그렇다고 온천에 갈 돈은 없다.
3개월치 집세와 식비를 빼고 나면, 병아리 눈물만한 퇴직금과 쥐꼬리만한 저금이 남을 뿐이다.
 나는 고속도로가 보이는 세 평짜리 방이 달랑 한 칸 있는 집에서
한약을 달이며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p40



갑자기 몸이 안 좋아져서 직장을 그만 두고 계획에 없던 3개월 휴가를 갖게 됐지만,
여윳돈도 많지 않은 열악한 상황이다.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게 아무렇지도 않은 성격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 자신에게 장기간의 휴식을 명했을 때, 나는 기분이 대단히 상쾌해졌다.
지병이 있는데다 돈도 그리 많지 않으니, 집세와 식비와 약값, 약간의 용돈을 빼면
 여행 갈 돈은 고사하고 영화를 보러 갈 돈도, 신간을 살 돈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 대신 시간이 있었다.
시간이 있으면 평일의 텅텅 빈 도서관에 하루 온종일 죽치고 있을 수도 있고,
걸어서 다른 동네 주민회관에서 상영해 주는 옛날 영화를 보러 갈 수도 있다.
 전날 밤 기침 때문에 고생하지 않고 기분 좋게 일어났을 때에는
조금 멀리 나가 다마천까지 쑥을 뜯으러 갈 수도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은퇴한 노인네 같은 생활이었지만,
그런 생활을 계속하던 중에 나는 생각지도 못한 재능을 발견했다.
즉 나는 혼자 놀기에 능했던 것이다."   p160
 


그런데도 이렇게 느긋하고 여유있는 사고방식이라니!
매일 시간과 돈에 쫓겨 안달복달하는 나로써는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두어달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평일의 텅 빈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죽쳐보기도 하고, 못 본 영화들도 챙겨보면서
유유자적하게 살아보고 싶어~



 "여름이 되어 몇 년 만의 무더위가 찾아왔다.
나는 오히려 이 끔찍한 무더위를 즐기면서, 풍경과 모기향을 갖춰놓고
유카타를 느슨하게 입고 다다미방에 앉아 나팔꽃 모양의 부채를 부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워드프로세서 앞에서 지냈다."   p114



저기서 워드프로세서만 책으로 바꾸면 정말 완벽한 풍경이지~
더위에도 여유를 잃지 않는 우리의 멋진 주인공!ㅋ



"까끌까끌하게 자란 수염을 깎고, 방 안 공기를 환기한 다음, 트레킹슈즈를 신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에 간다에라도 가서 헌책방 구경이라도 할까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몇 걸음 가지도 않아 얄팍한 지갑이 생각났다.(......)

나는 길바닥에 선 채 잠시 생각한 끝에 계획을 변경했다.
돈이 없다고 봄을 즐길 수 없는 건 아니다. 오히려 빈털터리인 편이 즐거움이 더 크다.(......)

노선 안내도를 눈으로 좇다 보니 갑자기 이노카시라 공원에 가보고 싶어졌다.
왜 그런지 나는 물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물고기도 좋아한다.
공원에서 멍하니 있는 사치도 반년 만 아닌가.
바지 뒷주머니에는 현재 읽고 있는 추리 소설이 한 권. 완벽한 아이디어다.

역 매점에서 초콜릿 바를 하나 사들고 어슬렁어슬렁 공원으로 들어섰다.(......)
천천히 연못을 반 바퀴 돌아 벤텐당에서 참배를 드리고, 적당한 벤치를 찾아 앉았다.
 햇살과 나뭇잎이 책 위에 얼룩덜룩한 그늘을 드리우는 근사한 곳이었다.
나는 초콜릿 바를 먹으며 책장을 넘겼다."   p282-284
 


돈이 없어도 그의 여유는 여전하다.

봄바람 솔솔 부는 공원의 나무 그늘 벤치에 앉아 초콜릿 바를 먹으며 읽는 책이라니~
아,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하는 독서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영원한 로망 아니겠어?
(근데 실제로 하면 허리 아프고 목 아플 것 같아서 실행은 해보지 않음.ㅋ)


그리고 이 책에는 주인공의 이런 느긋한 일상 이야기 말고도 소소하게 재미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예를 들자면 이런 거~



 "나쓰미의 어머니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사람이었다.
눈이 크고, 애교 있고, 게다가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인인데,
왜 그런지 상처의 딱지를 떼는 게 취미다.
초등학생 때 나쓰미의 여름방학 숙제를 도와주러 외삼촌댁에 가자,
직접 구운 케이크와 평소 집에서는 먹을 수 없는 맛있는 초콜릿 등을 내와서는
어느 틈에 내 무릎에 앉은 딱지를 보고
"얘, 100엔 줄게 외숙모가 그 딱지 뜯자." 하면서 슬금슬금 다가왔다."   p92



100엔 줄게 딱지 뜯자니....남의 무릎팍 딱지를!! 아, 웃겨~ㅋㅋ



 "아까 사준 생일선물, 위스망스의 <거꾸로> 복각본이다.

"이거 나왔을 때부터 갖고 싶었거든."

목을 가르랑거릴 것 같은 분위기로 책을 이리저리 쓰다듬고 있다.
냄새를 맡아보질 않나, 작은 티끌을 털어내질 않나, 하여튼 바쁘다."   p91



책을 엄청 좋아하는 주인공 사촌의 이야기도 왠지 공감이....^^;;;



 "저번에 잠깐 중국여행을 갔다 왔는데, 그 틈에 내 소중한 <흑거미 클럽>을 빼갔지 뭐야.
앞으로는 미스터리를 다 읽으면 등장인물 일람표에 범인 이름을 써둘까 봐."   p92



이거, 책 훔쳐가는 사람 물먹이는 데 꽤 좋을 것 같은 방법...?ㅋ



 " "무슨 소리야? 회사 그만뒀다며. 한가하잖아."

"그렇지도 않습니다. 독서에 힘쓰는 중이에요.
그동안 읽고 싶은데 못 읽은 책이 쌓여 있어서 꽤 바쁜걸요."

"뭐야, 독서? 책 나부랭이를 읽고 있다는 건 한가하다는 소리 아니냐."

나는 며칠 전 공원에서 하루 온종일 사진을 찍은 것,
학교 다닐 때 쓴 소설을 워드프로세서로 정서 중이라는 것,
학교 다닐 때부터 모아온 팸플릿 등을 정리 분류한 것 등을 머리에 떠올렸으나 결국 포기했다.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을 타의에 의해 하는 상태를 '바쁘다'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한가한 것.
마루야마 선배의 머릿속에서는 이렇게 정의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뭐, 반론은 할 수 없지만."   p161-162



마지막으로, 마음에 마니 와닿았던 문구 하나.
머,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고....^^


암튼 이 책 그때 참 재밌게 읽었었는데 말야.
중심 스토리와 큰 상관은 없지만, 여기저기 숨어 있는 요런 소소한 이야기들 때문에 더 맘에 들었었지.
(책 리뷰는 요기 클릭!!)

그때 리뷰쓰면서 요런 이야기들을 따로 모아서 포스팅해봐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미루다 보니 깜박 하고 이제서야 올리네.
근데 이미 다 까먹은 상태에서 대충 들춰보며 하는 포스팅이 제대로 될 리가...ㅠㅠ

 

 

 

 

* 현재 새로운 표지의 개정판으로 변경.

 

 


* 아래 링크를 통해 구매하시면 1%의 알라딘 추가적립금을 받으실 수 있어요~^^
(익월 15일 자동지급, 링크 도서를 포함한 해당 주문건의 총액에 대한 1%)



-- 추천 한 방 꾹! 눌러주심 안 잡아먹어효~!!! (>_<) --

 

Posted by 블랑블랑

댓글을 달아 주세요


Statistics Graph

최근에 달린 댓글

달력

 « |  » 2019.11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