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말을 죽였을까>  /  지은이 : 이시백  /  삶이보이는창



길지 않은 분량으로 저녁 나절에 가뿐하게 읽어치운 '이시백'의 <누가 말을 죽였을까>
충청도 음정면 십오 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 일명 '농촌 소설'이다.

사실 처음엔 대사 말투도 약간 낯설고 해서 책장이 살짝 더디게 넘어갔는데,
뒤로 갈 수록 그 문장에 익숙해져서인지 점점 재밌어져지더라~^^


보통 농촌 이야기라고 하면,
소박하고 인정 넘치고 훈훈한 그런 이야기를 떠올리기 쉬운데, 이 소설은 조금 다르다.

저자는 농촌 사람들이 고통받는 부조리한 현실을 보여주는 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인간으로써의 추한 욕망들 또한 보여준다.

그들은 소설 속에서 고단하고 억울하게, 그리고 동시에 모질고 이기적이며 욕심사납게 등장한다.
(그렇다고 무거운 분위기의 소설은 아니다. 오히려 웃긴다.^^)




"그럼 너는 뭐냐?
양반이 배 내밀고 타고 다니다, 늙어 허리가 꺾어져 죽은 말과 다를 바가 무엇이더냐.
그것도 정이랍시고, 새에게 쪼이고 개에게 뜯기지 않도록 길가에 묻어준 것만으로도
평생토록 주인 태우고 다닌 덕이라고 감지덕지하는,
너는 도대체 말이 아니고 또 뭐란 말이냐?"  
p131


정부에서 권장하는 농사로 전환했다가 꼼짝없이 손해를 뒤집어 쓰고,
시집오는 처자가 없어 늦은 나이에 큰 돈 들여 외국에서 데려온 신부에게 뒷통수를 맞고,
허리가 휘어라 일을 해도 마냥 그 처지인 지긋지긋한 농사를 끝내 버리지 못 하고,
고단한 삶에 지쳐 결국은 제초제까지 마시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애처롭다.


하지만 소설은 그들을
그저 여기저기 치이며 고단하게 살아가는 착하고 순박한 사람들로만 보여주지는 않는다.


"처음에는 낯설어 말없이 물건만 내주던 평식은
차츰 익숙해지면서 더듬거리는 그들에게 말끝마다 욕을 덧붙였다.
"뭐 줘, 새끼야."
"씨발 새까, 오천원 여."
"말두 뙥뙥히 못혀, 병신 새끼야."
이러다 보니 한국말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게 주인이 말끝마다 '새끼야'를 붙이는 동산슈퍼를 '새끼야 슈퍼'라고 저들끼리 부르게 되었다."  
p189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땅값이 오르자 뻔질나게 드나드는 자식들이 있고,
농한기에는 산 여기저기에 불법 올무를 놔서 야생동물을 잡고,
조그만 감투를 이용해서 뒤로 이익을 챙기고,
동남아시아계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새끼'라 부르며 함부로 무시한다.
(그러나 그는 백인 노동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차마 눈앞에서 죽어가는 걸 지켜 볼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딴 데루 보냈어."

"어디로?"

"보신탕집으로."  
p175




농촌을 그저 미화시키거나 한 이야기가 아니라,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들인데
개인적으로 그 때문에 더욱 흥미롭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다.

그치만 중요한 건, 이런 걸 다 떠나서 이야기 자체가 퍽 재밌게 읽힌다는 거~^^

특히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배경에 맞춰 심한 충청도 사투리로 나오는데,
이 말투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대사들이 참 웃긴다. 거의 만담 수준...ㅋ
웃기면서 한 번씩 정곡을 콕콕 찌르기도 하고 말이지~

단점이라면, 사투리가 너무 심하다 보니,
익숙치 않은 나로써는 읽고도 뜻이 바로 들어오지 않아서 되풀이 읽어야 하는 부분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반대로 읽는 맛이 있어서, 머, 그 정도 수고는 그럭저럭 눈감아 줄 만.^^

 
"유기농두 좋구, 무농약두 다 좋은디, 막상 장에 가서 배추며 열무 고를 때면
잎사귀 앞뒤루 까뒤집구 행여 벌레 먹은 구녕 하나라두 있나 샅샅이 뒤지는 게 도시것들이여.
말 다르구 장바구니 다르대니께." (......)

"즈덜은 애들 과자버텀 라면까지 방부제다 색소다 반죽을 혀서 처먹이면서,
쌀 배추에는 살짝 약내만 풍겨두 죄 난리를 떠니 우세스러워 못 볼 일이여."

"몸땡이가 그리 걱정되믄 즤 손목아지루 농살 져서 처먹든지......"

"만만헌 게 홍애 좆이라구, 자동차며 고무신짝이며 값 올릴 때는 일언반구 한마디 말도 않으면서,
쌀값은 십 년 전 금으루 꽉 붙들어매구,
고춧값이 좀 좋다 허믄 싼 나라서 수입혀다 풀어놔 똥금을 맨들어 죄 갈아엎게 만들구,
그따구루 하믄서 약을 쳤네 마네 지랄덜을 떨어여.
약 친다구 약값이라두 보태준 적두 웂으면서." 
  p169



* 책 자세히 보기는 아래 해당 이미지 클릭!!





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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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철이 2010.09.05 2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특한(?) 소설일 것 같네요.. 근데 어떻게 이렇게 많은 책들을 읽으시는지.. 대단하세요,,

    • 곡물 2010.09.05 22:09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니깐요 정말 대단하신듯

    • 블랑블랑 2010.09.05 23:4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렇게 읽어도 사놓고 못 읽은 책들이 쌓이고 있어요..ㅋ
      그나마 요즘은 시간이 쬐금 있어서 평소보다 더 읽은 거구요,,
      아마 담달 정도부터는 일이 바빠져서 이만큼도 못 읽을 거 같애요...
      슬퍼요...ㅠㅠ

  2. 곡물 2010.09.07 22: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실 예전부터 봤지만 뭐 아이디 매번 바꾸다보니 거의 저빼고는 댓글다는 사람이 없더군요. 이웃이 가능하다면 좋겠는데 잘모르겠네요.
    요즘은 별로 재밌는책들을 않읽으셔서 방문횟수가 쫌 줄어들었네요 ㅋㅋ

    • 블랑블랑 2010.09.07 2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앗!! 그동안 곡물님이 아뒤를 바꾸셔서 댓글을!!!ㅋㅋ
      원래는 블로그 댓글에 전혀 신경을 안 썼는데 요즘 조금 외롭더라구요.
      왠지 혼자 중얼거리며 노는 왕따같은 느낌이..ㅋ

  3. 곡물 2010.09.07 22:3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 댓글도 재밌으시네 신난다@
    네이버 같은경우는 이정도 되면 하나에 20개정도 달님은 어찌그리 고우신지 블로그 아세요? 앞다투어 선플하는곳 ㅋ

    • 블랑블랑 2010.09.07 22:4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말씀하신 블로그 지금 잠깐 들어가보고 왔는데, 저도 검색 중에 가끔 들어갔던 곳이네요.
      아우, 그분은 책도 무지 마니 읽으시고 글도 잘 쓰셔서...
      그저 부러울 따름이져..ㅎ

  4. 곡물 2010.09.08 16: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둘다 북리뷰의 거장 참고로 전 블랑님블로그를 더많이 방문하게 되네요 ㅋㅋ
    관리 자주 해주시고 재밌는 책이나 새로운 작가등은 거의 100퍼센트 블랑님이세요

  5. 한겨레출판 2013.04.11 14: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한겨레출판입니다. 4월 26일(금) 저녁 7시 반에 이시백 선생님의 북토크 행사가 있을 예정인데 혹시 시간 되시면 아래로 신청해주세요. http://book.interpark.com/event/EventFntTemPlate.do?_method=GenTemplate&sc.evtNo=139014&bkid1=kbook&bkid2=prd&bkid3=evt&bkid4=001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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