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 신부>  /  지은이 : 마거릿 애트우드  /  옮긴이 : 이은선  /  민음사

 

 

 

1년도 더 전에 이벤트 당첨선물로 받았던 책인데

계속 바쁘다 보니 1,2권 합쳐 8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압박에 선뜻 손이 안 가서

여태 책꽂이에 묵히고만 있다가 저번 주말에 하루 날 잡아 드뎌 꺼내읽었다.ㅋ

 

아, 근데 이렇게 재밌을 줄 알았으면 진작 읽었을 걸....-_-

800페이지가 무색하게 한자리에 진득하니 붙어서 쭈욱 읽어버리게 만들더라능~ㅎ

 

'지니아'라는 팜 므 파탈, 악녀에 관한 이야기인데,

사실은 그녀 때문에 연인, 혹은 남편을 잃은 세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는 게 맞겠다.

 

 

"토니는 지니아에 대해 연구한 결과 모험을 좋아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녀는 문을 부수고 들어가길 좋아하고, 남의 것을 빼앗길 좋아한다."   1권 中, p498

 

 

그냥 미스터리가 살짝 가미된 소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읽어보니 이것은 페미니즘 소설.ㅎ

그러니까 일단은 여성들에게 더욱 추천한다.

 

 

 

 

똑똑한 역사학자 '토니', 당당하고 부유한 여성사업가 '로즈', 여리고 소박한 몽상가 '캐리스',

이 세 명의 중년여성들은 전혀 다른 상황과 성격임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 절친한 사이다.

그  이유는 그녀들이 공유하고 있는 같은 상처 때문.

바로 '지니아'라는 여성에게 연인이나 남편을 빼앗긴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 동창이었던 '지니아'는 그녀들 마음속의 약한 부분을 정확히 자극해서

연민과 호의와 친절을 끌어내고, 그 감정을 이용해 곁에 머물면서 단물을 빨아먹고,

마지막에는 그녀들의 연인이나 남편을 빼앗아 달아난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남자마저 가차없이 버리고,

버림받은 그들은 껍데기만 남은 모습으로 돌아오거나, 자살하거나, 실종된다.

 

 

"그녀는 갖지 못한 것을 원하고,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고,

그런 다음 손에 넣은 것을 경멸하는 그런 여자다."   2권 中, p167

 

 

어느날 갑작스러운 '지니아'의 사망소식이 전해지고, 세 여자는 그녀의 장례식에 참석한다.

그러나 그녀들은 그후로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끊임없이 '지니아'의 망령과, 연인 혹은 남편의 부재에 삶을 지배당한다.

비록 그가 곁에 있더라도 그의 마음은 '지니아'에게 있다는 생각에 괴롭다.

 

 

"그는 아마도 절망의 늪에서 기어 나와 그녀가 너무도 착한 여자라고 말하고,

저녁 때 먹을 간식을 사 오고, 판에 박힌 의식을 반복할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떠났는지 모를 지니아가 돌아오면 이런 다정한 습관들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그는 대여받은 남자에 불과했다.

그는 지니아에 중독돼 있었다.

그녀를 한 번 입에 대면 다시 사라질 것이다.

그는 인간의 귀에는 안 들리는 초음파 호루라기에 반응하는 개와 같았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면 달려갈 것이다."   1권 中, p341

 

 

그러다가 '지니아'의 장례식이 있은지 5년이 되어가던 어느날,

매달 갖는 그녀들만의 점심 약속을 위해 찾은 식당에 그녀가 나타난다.

전보다 더 아름다워지고 강력해진 모습으로.

 

도대체 어찌된 영문이며, 죽음을 위장했다가 다시 돌아온 '지니아'의 목적은 무엇인가!

 

 

"절박한 사람들을 보면 불안해진다. (......)

그런 사람들은 지독하게 덤벼든다. 뭐든 빼앗으려 한다."   1권 中, p52-53

 

 

세 여자는 바빠진다.

'지니아'를 미행하고, 살해계획을 세우고, 담판을 지으러 찾아간다.

그런데 돌아가는 양상이 묘하다.

 

'지니아'는 또 다시 그녀들 각자의 마음속 약한 부분을 찾아 각자에게 그에 맞는 거짓말을 늘어놓고

세 여자는 이번에도 흔들린다.

그러나 결국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신통하게도 넘어가지 않은 그녀들에게

'지니아'가 쏟아내는 진실이란(이것조차 진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지만.) 충격적이다.

그녀들이 오랜 세월 동안 놓지 못 하고 있던 '그'들에 관한 진실...

 

한바탕 그렇게 광풍을 치르고서야 그녀들은 드디어 '그'에게서 독립해 온전한 자신을 찾는다.

그렇다면 '지니아'는 과연 그녀들의 적이었을까, 아니면 구원자였을까...

 

 

"눈에 보이는 게 진실이야. 그녀가 로즈에게 말한다.

아니면 네가 제대로 보지 못한 거지."   2권 中, p9

 

 

 

 

소설의 내용은 주로 '토니'와 '로즈', '캐리스'의 과거이야기로 이루어지는데,

그녀들의 사랑과 배신의 역사는 물론, 부모들의 이야기까지 등장해서

여러 유형의 남녀관계를 보여준다.

근데 이 세 가지 이야기가 모두 너무 재밌어! >_<

세 여자의 사연과 역사와 심리를 이토록 완벽하게 창조해낸 저자에게 완전 반했다능~+_+

각자의 이야기로 독립된 세 편의 작품을 만들어도 부족함이 없겠어~ㅎ

 

아쉽게도 '지니아'의 시점은 끝까지 나오지 않아서 그녀의 본질은 알 수가 없다.

그녀가 어떻게 '그'들을 그토록 중독시켰는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상대에 따라 그 상대가 반응할만한 완벽한 거짓을 만들어내는 능력은 정말 감탄할 만하다.

 

 

"어쩌면 그게 지니아의 수법이었을지 모른다.

결핍과 굶주림과 텅빈 동냥 그릇의 이미지로 다가갔을지 모른다.

무릎을 꿇고 자비를 바라며 두 손을 위로 내밀었을지 모른다.

어쩌면 미치는 동전을 몇 개 던져 주고 싶었을지 모른다.

로즈 옆에서는 그럴 기회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는 베풂과 용서와 구원을 받기만 하는 데 질려

자기도 조금 베풀고 누군가를 구원하고 싶었을지 모른다.

무릎 꿇은 미녀보다 더 좋은 게 무릎 꿇고 고마워할 줄 아는 미녀였다."   2권 中, p152-153

 

 

그리고 세 여자의 여리고 착한 부분을 이용해서 그녀들의 등을 치는

'지니아'의 죄질이 나쁜 거야 당연히 두말할 필요가 없지만,

끝까지 읽어나가다 보면 '지니아'보다 오히려 세 여자의 남자들이야말로

그녀들의 삶을 망친 보다 근본적인 장본인이라는 생각이 스물스물 든다.

 

겉으로는 순수하고 열정적이고 번듯하지만,

사실은 유혹에 너무나도 약하고 어리석고 한심하고 찌질하고 미성숙하고 무책임한 그들...

 

 

"미치의 우주론에서 로즈의 몸은 소유, 안정감, 행복한 가정, 난로와 집, 오랜 습관을 의미한다.

아이들의 엄마. 둥지.

현재 그의 시야를 독점하고 있는 그것에게는 다른 단어들이 부여될 것이다.

모험, 젊음, 자유, 미지의 세계, 부담 없는 섹스.

추가 뒤로 넘어가면, 그러니까 그 다른 몸뚱이가

골칫거리, 결단, 요구, 토라짐, 청승을 의미하기 시작하면 다시 로즈에게 차례가 돌아올 것이다.

늘 그래 왔다. (......)

 

미치가 그 여자들을 얼마나 간단하게 정리하는지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그는 그들을 이빨로 물어뜯어 갈기갈기 찢어 놓고 뒤처리는 로즈에게 맡긴다.

허리를 미친 듯이 움직이고 나서 칠판 지우듯 지워 버리고 나면

그 여자들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는 쪽은 로즈다. 그들의 이름과 그들에 대한 모든 것을."   2권 中, p24-25

 

 

"그는 맛있는 달걀처럼 사소한 데 기뻐하고, 맛없는 달걀처럼 사소한 데 우울해한다.

비위를 맞추기는 쉽지만, 지켜 주기는 어려운 사람이다."   1권 中, p33

 

 

"이 세상에 남자가 여자한테 원하는 건 단 하나, 섹스뿐이야.

중요한 건 섹스의 대가로 남자들한테 얼마를 받아 내느냐지."   1권 中, p408

 

 

'지니아'의 말처럼 어쩌면 그녀들은

'벌레같은 남자'를 인생에서 치워준 그녀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토니'와 '로즈'와 '캐리스' 역시 그녀를 증오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은근히 부러워하고 동경한다.

 

사랑에 인생을 점령당해 휘둘리는 경우가 아무래도 남성보다는 여성쪽에 더 많으니만큼,

그런 의미에서 여성들이 꼭 일독해보면 좋을 작품!

재미도 있고 생각할거리도 있고~!

 

'지니아'가 돌아온 목적이 무엇이며, 그녀가 어떻게 되는지는

앞으로 소설을 읽을 사람들을 위해 남겨두기로~^^

 

 

"아무튼 그녀는 다른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아무나 되고 싶지는 않다.

가끔은 단 하루만이라도, 단 한 시간만이라도,

어쩔 수 없다면 단 5분만이라도 지니아가 되어 보고 싶다."   2권 中, p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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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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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요룬 2013.08.22 21: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소문의여자를 연상시키네요
    읽어봐야겠습니다^^

    • 블랑블랑 2013.08.23 22:3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여성 입장에서 볼 때 소문의 여자에 비해 완전 비호감이죠.
      소문의 여자는 주로 부패한 남성들만 이용하고 여성들에게는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 반해,
      이 작품의 지니아는 여자들, 그것도 자신에게 호의를 베푼 상대의 등을 치거든요.
      죄질이 아주 나쁘죠.ㅎㅎ
      제가 리뷰에 오히려 구원자가 아닐까라고 한 건 단순히 결과론적인 얘기에요.^^

  2. 꿍알 2013.08.23 16: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적어주신 내용만으로도 너무 흥미진진하네요.
    대체 지니아는 어떤여자이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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