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초>  /  지은이 : 한수산  /  민음사  /  2005년  /  12,000원

 

 

 

'한수산'은 어쩐지 소녀 취향의 감성적인 작품을 쓰는 작가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사실 제대로 읽어본 작품도 하나 없으면서

대체 그 생각의 시초가 뭐였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언젠가부터 그렇게.....^^;;;;

근데 이 <부초>를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확실히 깨달았다.

 

와,, 이거 진짜 명작!!! +_+

 

1976년에 씌어진 작품으로,

시대변화에 따라 사라져가던 써커스 곡마단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렸다.

마흔 명이 넘는 단원들로 이루어진 '일월곡예단'을 배경으로,

여러 인물들의 다양한 인생사가 펼쳐진다.

 

 

"지혜가 다칠 때 전 깨달았어요.

천막 속의 우리랑 구경하는 남들이랑 어떻게 다른 건지 알 수 있었어요.

우리는 죽어가면서도 곡예를 보여주어야 하는 이 바닥에서 한 걸음도 물러설 수가 없지만

그렇지만 저들은 우리를 바라보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모두들 천막을 떠나 사회로 나가고 싶어 하지.

그것도 네 말처럼 결국 구경하는 쪽에 앉고 싶어서야."

 

"곡예사라는 게 뭡니까.

사실 줄 위에서 사람은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게 원칙이에요.

그런데 이건 구경꾼이 가진 원칙이죠.

그러나 줄 위에서도 사람은 떨어지지 않는다는 거 이건 곡예사의 진실입니다.

곡예사는 몸으로 이 가능과 불가능을 뛰어넘어야 하나 봐요."

 

"너 많이 컸구나. 그래, 젊다는 건 말을 탄 거나 같지. 훅훅 지나가야지."

 

"모르겠어요.

왜 목숨은 이렇게도 질기게 고통스러워야 뭐 하나라도 알게 되는 건지."   p141-142

 

 

 

 

평생 곡예단을 따라 이리저리 방랑하며 살아온 마술사 '윤재' 아저씨,

몰래 사랑을 키워가는 젊은 연인 '하명'과 '지혜',

홀로 아이를 키우며 1년에 두 번 찾아오는 애아빠를 기다리는 '석이네',

아내의 반대를 무릎쓰고 처자식과 떨어져 곡예단과 함께 생활하는 총무 '명수',

장소를 옮길 때마다 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난쟁이 '칠룡이' 등등....

 

'하명'과의 사랑을 키워가던 '지혜'는 어느날밤 단원 중 한명에게 겁탈을 당하고,

공연 중 타던 줄이 끊어져 큰 부상을 입기까지 하자

입원한 병원에서 기브스를 풀기도 전에 자취를 감춘다.

'하명'은 말도 없이 사라져버린 그녀를 원망하며 방황한다.

 

남자 집안의 반대로 결혼하지 못하고 홀로 아들 '석이'를 낳아 키우던 '석이네'는

보고 들은 게 써커스단에서의 생활뿐이라 점점 되바라져가는 어린 아들의 모습에 갈등한다.

결국 아들의 정상적인 교육을 위해 따로 가정을 꾸린 아이아빠에게 보내지만

그후로 그녀는 도무지 마음을 잡을 수가 없고 결국 사단을 내고 만다.

 

번 돈을 팬티 속에 차고 다니며 땅을 사모으는 난쟁이 '칠룡이'는

곡예단 일을 그만 두고 어머니와 농사를 지으며 사는 게 꿈이다.

하지만 자꾸 배가 아픈 게 심상치가 않다.

 

이렇게 줄줄 이어지는 여러 단원들의 굴곡진 인생사는

큰 사건 없이도 소설을 전혀 지루함 없이 끌어간다.

 

고단하고 답답한 이야기지만 한번씩 시원한 장면들도 있다.

'지혜'를 겁탈한 놈이 단원들에게 몰매를 맞는 장면,

곡예단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지역 건달들을 단원들이 똘똘 뭉쳐 혼내주는 장면,

단장이 풍을 맞아 쓰러진 뒤 임시단장이 된 그의 동생이

속임수를 써서 단원들의 일당을 떼어먹다가 결국 된통 당하는 장면 등등...^^

 

 

 

 

무려 3년 여에 걸친 취재를 바탕으로 썼다던데 그래서인지 정말 이야기가 실감난다.

곡예단의 생태랄까? 그런 것들도 흥미롭고...

예를 들어 단원들이 받는 일당.

늘 일당 전부를 받는 게 아니라 그날의 매상에 따라

기본매상이 안되면 반일당을 받기도 하고, 매상이 높으면 수당을 더 받기도 한다고~

이러면 진짜 단원들 전체가 운명공동체가 되겠구만.ㅎ 

 

한마디로 재미와 작품성을 둘 다 갖추고 있는 작품이다.

 

찰진 대사와 쫙쫙 감기는 문장들, 매력적인 캐릭터, 삶에 대한 통찰....

특히 캐릭터들이 어찌나 생생한지,

진짜 어딘가에 실재로 있는, 혹은 있었던 사람들같은 느낌이 든다니까~

절반도 읽기 전에 막 정들더라능....ㅎㅎ^^;;;;

 

소설을 다 읽을 때쯤,

작품 속 인물들의 고단한 곡예인생이 비단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된다.

우리의 인생이란 게 결국은 모두 한바탕 곡예인 것을....

 

'하명' 역시 소설의 마지막에 깨닫는다.

 

 

"난 우리만 무대 위에 있고 남들은 다 구경꾼이라고 생각했었지.

그래서 외로웠던 거야. 그건 잘못이야. 그게 아니야.

갈보가 구경오면 그게 구경꾼이지만 우리가 갈보집엘 가면 그땐 우리가 구경꾼이잖아.

난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들이란 저마다 있는 힘을 다해서 살아간다는 거야.

못난 놈도 제 딴에는 자기가 가진 거 남김없이 다 털어서 살고 있다는 걸 이제야 알겠어.

그래...... 이 세상바닥도 써커스바닥이나 똑같아.

손님이 따로 없다 뿐이지 분 바르고 옷 갈아입고 재주 피며 살기는 마찬가지란 생각이야.

 어디로 가게 될지 아직은 정처가 없다만......"

 

하명은 햇빛 속에서 가만히 눈을 돌려 칠룡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천천히 덕보와 연희에게로 눈길을 옮겨갔다.

 

"어디엘 가 있든 내가 디디고 있는 땅이 무대가 아니겠어. 하늘이 천막이지.

시퍼렇게 살아 있는 목숨 가지고 어디든 발을 붙여 볼란다.

어느 동네든 실수해서 떨어지고 죽고 다치기는 매일반일 테니까."   p312

 

 

이 작품을 '한수산'의 대표작으로 꼽는 사람들이 많던데

이거 읽고 너무 반해서 그의 작품을 다 찾아읽어볼까 생각중.

여태 이런 작가의 작품을 하나도 안 읽고 난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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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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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귀여운걸 2014.11.04 02: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관심이 생기는 소설이네요..
    링크를 통해 한권 구매해야겠어요^^

  2. 2014.11.04 11: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3. Sunyoung Cho 2014.11.04 1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릴 때 '욕망의 거리'라는 작품 재밌게 읽었는데..... 하도 오래된 책이라서 다 낡고 노르스름해져가지고 집안 대청소할때 버렸다가 엄청나게 후회한 기억이 납니다 ㅠㅠ 블랑블랑님 포스팅 보고 생각난 김에 그 책도 사고 부초도 사야겠어요 홍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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