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육에 이르는 병>  /  지은이 : 아베코 다케마루  /  옮긴이 : 권일영  /  시공사


어릴적에 애거서 크리스티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특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읽고는
마지막 결말에 엄청난 쇼크를 먹었던 기억이 있다.
이런 걸 서술트릭이라고 부른다는 건 아주 나중에서야 알았고. 암튼.

얼마전부터 갑자기 그때의 충격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져서 (자극이 필요해!ㅋ)
이리저리 검색해보니 대충 '살육에 이르는 병'과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가
이쪽 분야에서는 그래도 유명한 작품이라고들 하길래 결국 연달아 두 권 다 질렀다.
현재 그 중에서 요 '살육에 이르는 병'만 읽은 상태.^^




책의 첫 장은 뜬금없이 '에필로그'(프롤로그가 아니다!)로부터 시작된다.
에필로그에서는 범행현장에서 체포된 '미노루'가 자신의 죄를 순순히 시인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그 다음 장부터는 다시 사건의 처음으로 돌아가서 여성들을 연쇄살인하고 다니는 '미노루'와,
아들의 방 휴지통에서 피묻은 비닐봉지를 보고 아들의 범행을 의심하는 '마사코',
피해자의 여동생과 사적으로 범인을 추적해나가는 퇴직 형사 '히구치'의 이야기가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이처럼 이야기는 범인이 '미노루'라는 것을 이미 첫장에서부터 알려준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속에 어떤 비밀이 숨어있길래 그렇게 반전, 반전 떠들어대는 것일까.
비밀은 마지막 페이지에 가서야 밝혀지고 모든 이야기는 새롭게 구성된다.

(충격적인 반전을 중점적으로 홍보하는 만큼, 책은 띠지로 아예 꽁꽁 싸메져있고,
거기에는 절대 결말을 미리 보지 말라는 경고 문구까지 새겨져 있다.^^;;;)




확실히 놀라운 반전이기는 하다.
'충격적인 결말을 확인한 순간, 다시 첫 페이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소개문구는 사실이어서,
첫 장에 에필로그가 나와있는 구성상, 나 역시 첫 장으로 돌아가서 확인하고
전체 내용을 곱씹으며 머릿속에서 모든 이야기를 다시 재조립해봐야 했으니까.^^

다만, 기대했던 만큼(어린 시절 '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을 읽었을 때만큼)의 충격은 없었던 것이,
이게 하도 반전에 대한 말들이 많았던지라,
읽으면서 나 스스로 모든 가능한 결말을 떠올렸던 탓에 결국 그 중에 하나 걸렸더란 말이지.ㅋ
물론 굉장히 모호하게 생각했고, 또 '설마~'했던 것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이 쇼킹한 반전을 제외하고라도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책이다.
살해한 여성의 가슴과 성기(질과 자궁을 포함해서)를 자르고,
그것을 집으로 가져가 자위행위를 하는
'미노루'의 엽기변태행각은 불쾌하지만 꽤 흥미롭다.
머, 원래 야하고 드럽고 잔인한 얘기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 않던가.^^;;;;




정작 읽으면서 잔인한 행위 그 자체보다 더 무서웠던 것은 바로 '미노루'의 심리상태.
역시 미친놈이 제일 무섭다니까.-_-;;;;
이 세상 곳곳에 얼마나 많은 정신이상자들이 정상인과 전혀 다름없는 모습으로
구석구석 숨어있을지를(자신도 깨닫지 못 하는 채로!) 생각하면 왠지 소름이 훅 돋는다.
머, 정상과 이상의 구분이라는 게 과연 애초에 가능하기나 한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아, 이 세상에서 그 무엇보다 무서운 이 병과 그 비참함을 더욱 두렵게 만드는 것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단순히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숨기려 한다거나, 또는 실제로 숨길 수 있다거나,
어느 누구도 발견하지 못하게 사람들 사이에 숨어 지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이 병은
걸린 본인마저도 깨닫지 못하고 사람들 사이에 숨어 지내게 된다는 것이다.

- 쇠렌 키르케고르 -



글고 갠적으로 난 '마사코'의 자식에 대한 그 집착도 넘 무섭더라.
자식을 올바르게 키운다는 착각 속에서 매일같이 아들의 방을 뒤지고,
쓰레기통 휴지로 미루어 자위횟수까지 헤아리는 그녀의 모습은 정말 재수없고 끔찍.-_-;;;

암튼 전체적으로 좀 불쾌한 소설이긴 하지만 그래도 재밌다. 그리고 무섭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이 충격적인 결말을 끌어내기 위해 조금 작위적인 부분들이 느껴진다는 것.
요거에 대해서도 몇가지 얘기하고 싶지만, 스포가 되는지라 참겠다. 으음...(허벅지 꼬집!ㅋ)



* '서술트릭' 소설들 자세히 보기!!





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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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Coolpepper 2009.12.11 09: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의 반전이 더 흥미로웠습니다. "살육.."이 하나의 인물 트릭을 교묘하게 숨겨놓은 거라면 "벚꽃.."은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반전이거든요.. 지금 쯤이라면 벌써 읽으셨을 것 같지만 ^^; "살육.."은 저도 절대 당하지 않겠다고 눈 부릅뜨고 봐서 사실 아주 놀랍지는 않았다는 ㅎㅎ

  2. 2009.12.14 14: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블랑블랑 2009.12.14 17: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벚꽃 어제 읽고 지금 포스팅했답니다. 근데 머 스포될까 봐 조심하다 보니 별로 쓸 말도 없고, 어제 잠을 못 자고 나온 관계로 정신도 몽롱한 상태라 먼가 엉망진창...ㅋ^^;;;
      근데 반전 정말 멋지던데요. 왜 내가 그 부분을 전혀 의심해보지 못 했는지 정말 한심스러웠다죠.ㅋ
      글고 미국 추리소설도 좋아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일본쪽이 같은 동양권이다 보니 더 친근감이 느껴져서 좋은 거 같애요. 더 쇼킹하기도 하구요.ㅎㅎ
      근데 말씀하신 일본 엄마의 예는 완전 충격인데요...아, 소름끼쳐~-_-;;;;

  3. 2009.12.27 21: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반전물은 아무생각안하고 멍때리며 읽는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기도...

  4. apple 2010.04.19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휴, 갠적으론이걸 다 읽고 난 뒤에 휴유증이 너무 남는군요.
    정신이 피폐해졌어요./
    사실 저는 서술 트릭하면 익스트림 노벨의 헛소리꾼 시리즈의
    목조르는 로맨티스트란 소설이 더 감명깊더군요.

  5. 벚꽃나무 2011.05.31 15: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살육에 이르는 병은 잔인함 때문에 한참 고민하다가 (전에 암흑동화를 보고 너무 역겨웠거든요), 블랑님의 리뷰를 읽고 그냥 읽어버렸는데, 수위는 생각보다 참을만하더라구요,. ^^; 전 긴장하면서 재밌게 읽었어요.그런데 정말 살인자가 생각할수록 오싹했어요. 정신세계 자체가 완전 다르다는...우리중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어쨋든 블랑님 덕분에 재밌는 책 정보 많이 얻어가고 있어요. 감사해요~~~^^

    • 블랑블랑 2011.06.01 0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니까요...
      정신이 어긋난 사람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암튼 잼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암흑동화>는 저도 좀 별로였어요.ㅎ
      댓글 남겨주셔서 감사해용~~^^*

  6. 신이ㅡ 2011.10.13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트릭에 뒷통수 맞았던 책인데, 그것보다 워낙 쇼킹한 소재들이 등장해서 후에 내 자식이 읽을까 읽고서 바로 폐기한 책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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