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  지은이 : 헤르타 뮐러  /  옮긴이 : 박경희  /  문학동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에 대한 홍보가 꽤 굉장하다.
그 광고용 미사여구들과 인상적인 표지의 그림에 휩쓸려서 나도 결국 구입했고,
꽤 오랜 시간이 걸려서 드뎌 다 읽어냈다.^^;;;
350페이지 정도의, 하루면 충분할 분량을 읽는 데 이렇게 오래 걸린 것은
재미없다거나 지루해서가 아니라, 먼가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번에 너무 많이 읽어버리면 머리에, 혹은 가슴에 과부하가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
전체적으로 고통에 대한 표현이 모호한 듯 느껴지지만,
그 어떤 적나라한 표현보다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두번째 가을이 다가올 무렵,
나는 운전사 코벨리안이 자리를 비운 사이 스텝에서 삽으로 들개를 때려죽였다.
개는 기차의 기적 소리처럼 짧게 칙 소리를 냈다.
주둥이 위로 비스듬히 이마가 갈라지자 한없이 제 몸을 늘이던 시간. 하조베.

나는 개를 먹고 싶었다."
   p141




 
1944년 여름 붉은 군대가 루마니아를 깊숙이 점령해 들어가고
파시즘을 신봉하던 독재자 안토네스쿠는 체포되어 처형당했다.
소련에 항복한 루마니아는 그때까지 동맹국이었던 나치 독일을 향해 급작스레 전쟁을 선포했다.
1945년 1월 소련의 장군 비노그라도프는 스탈린의 이름으로,
나치에 의해 파괴된 소련의 '재건'을 위해 루마니아에 거주하는 독일인들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루마니아에 살던 17세에서 45세 사이의 독일인은
남녀를 불문하고 빠짐없이 소련의 강제수용소로 유형을 갔다.

- 작가 후기 中 -



소설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위에서 수용소로 가게 된 17세 소년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수용소에서 소년은 끔찍한 배고픔에 직면하게 되고,
그를 지탱해 주는 것은 떠날 때 들은 할머니의 한 마디다. "너는 돌아올 거야."


"나는 지금까지도 배고픔을 상대로, 내가 그로부터 벗어났음을 보여주어야 한다.
더는 굶주리지 않아도 되었을 때부터 나는 글자 그대로 삶 자체를 먹는다.
먹을 때면 음식의 맛에 포위된다.
수용소에서 돌아온 이후로 육십 년 동안, 나는 굶주림에 대항해 먹는다."  
p29


극한에 이른 배고픔은 사람들을 비열한 존재로 만들기도 한다.
쇠약해져 죽어가는 아내의 수프를 몰래 훔쳐먹는 남편의 모습은 슬프다.


"사람들은 매일 식당에서 배고픈 천사가 부부를 조종하는 모습을 보았다.
법무사는 파수꾼처럼 아내를 찾았다. 아내가 다른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팔을 뻗어 그녀의 수프 그릇을 제 것 옆으로 당겨놓았다.
아내가 잠시라도 눈을 떼면 아내의 수프 그릇에 숟가락을 넣었다.
그녀가 눈치채면 이렇게 말했다. 숟가락만 넣었다 뺐어." 
  p246


동료가 죽으면 재빨리 옷과 신발을 챙기고 그가 숨겨놓은 빵을 꺼내먹고,
심지어 머리카락은 잘라서 바람막이 담요를 만든다.


"우리는 수용소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시체를 치우는 법을 배웠다.
사후경직이 시작되기 전에 죽은 이들의 옷을 벗긴다. 얼어 죽지 않으려면 그들의 옷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들이 아껴둔 빵을 먹는다.
그들이 마지막 숨을 거두면 죽음은 우리에게는 횡재다."  
p136




주인공은 수용소에서 어머니의 엽서를 받는다.
엽서에는 새로 태어난 그의 동생 사진이 실로 박아져있고,
출생에 관한 간단한 한 문장 외에 그에게 건네는 안부의 말은 어디에도 없다.


"내 생사를 모르는 부모님이 아이를 만들었다.
어머니는 태어났다는 말을 출생이라고 줄여 썼듯, 죽었다는 말도 사망이라고 쓸 것이다.
어머니는 이미 그렇게 했다. 어머니는 하얀 박음질땀이 부끄럽지 않을까.
내가 그 한 줄에서 무엇을 읽었는지 안다면.

너는 거기서 죽어도 돼, 그게 내 입장이야. 집에 입 하나 준 셈치고." 
  p236


세월이 가고 드디어 수용소에서 나오게 되었을 때,
집에 돌아간 주인공은 그러나 그 환경에 재대로 융합하지 못 한다.


"내가 돌아왔을 때 반가움보다 놀라움이 컸고, 집 안에 달갑지 않은 안도감이 퍼졌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살아 있음으로써 그들의 추모 기간을 기만한 것이었다."  
p303


수용소에서의 고통스러운 기억은 그 이후의 삶까지 지배하고,
그는 여전히 그 곳에서 완전히 빠져나오지 못 한다.


"작은 보물은 나 여기 있다라고 적힌 것들이야.
그것보다 조금 큰 보물은 아직 기억나니라고 적힌 것들이고.
그러나 무엇보다 큰 보물은 나 거기 있었다라고 적힌 것들이지.
(......)
고향에 돌아온 후로 내 보물에는 나 거기 있다는 물론 나 거기 있었다라는 말도 적혀 있지 않다.
내 보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p328




수용소에서의 장면장면들이 마치 끊어진 필름들을 모아 놓은 것처럼 이어지는데,
절망과 고통으로 가득 찬 비참한 상황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소설이라기보다는 시를 읽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나는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처참함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래도 비극은 시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것,
그것이 내 문학의 명예였다'
는 뮐러의 말처럼...

대사와 독백의 구분이 없이 주욱 이어지는데, 이런 표현 때문에 분위기가 굉장히 몽환적이다.
수많은 비유와 은유와 상징으로 이루어진 문장들은 어딘가 몽롱한 느낌마저 주는데,
이것이 현실인지 꿈인지 분간할 기력조차 없는 절망과 고통의 끝을 잘 표현해주는 듯.

그녀의 강렬하고 인상적인 문장들에 대해서는 이전 포스팅,
 *책읽는중*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 - 언어로 만든 예술품
에서도 얘기했었으니 그걸 참고하도록 하고,,,
암튼 이 책은 한 문장, 한 문장 꼭꼭 씹어서 가슴으로 읽어야 하는 책.
이 문장들을 원어가 아닌 번역이라는 다리 하나를 거쳐서 읽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안타깝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느낌으로 읽을 수 있게 해 준 번역자 '박경희'씨에게 감사~^^*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추천목록!!

* 아래 링크를 통해 구매하시면 1%의 알라딘 추가적립금을 받으실 수 있어요~^^
(익월 15일 자동지급, 링크 도서를 포함한 해당 주문건의 총액에 대한 1%)




-- 추천 한 방 꾹! 눌러주심 안 잡아먹어효~!!! (>_<) --

Posted by 블랑블랑

댓글을 달아 주세요


Statistics Graph

최근에 달린 댓글

달력

 « |  » 2019.12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