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지은이 : 페터 회  /  옮긴이 : 박현주  /  마음산책




호오가 극명하게 갈리는 평들과, 소설가 김연수의
'이 책까지 읽고 나면, 더이상 당신이 죽기 전에 읽어야만 하는 추리소설이란 없다.'
라는 엄청난 평에 혹해 무작정 사뒀던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아주아주 뒤늦은 얼마전에야 읽었다.
사실 언제 읽을지 기약없이 책꽂이에 꽂혀있었는데,
마침 마음산책 출판사 블로그에서 하는 사진 이벤트를 보고
재미삼아 함 참가해보려고 꺼냈다가 내친 김에 읽어버린 것.

페이지마다 빼곡히 들어찬 글자수와 600페이지가 훨씬 넘는 긴 분량에
결코 훌훌 읽히지 않는 내용인지라, 꽤 오랜 시간을 잡고 있어야 했지만 굉장히 매혹적인 소설.
정말이지 '매혹적인'이란 말이 이처럼 잘 어울리는 소설이라니!




한겨울의 어느날, 건물 지붕에서 이사야라는 소년이 떨어져 죽는 일이 발생한다.
경찰은 단순 추락사로 결론내지만,
눈에 대해 특별한 감각을 가진 스밀라는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고 의혹을 느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스밀라는 이사야가 끔찍한 고소공포증을 갖고 있어서
절대 지붕 위에서는 놀지 않을 거라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사야는 다리를 구부린 채로 쓰러져 있었다.
눈 속에 얼굴을 박고 손으로는 머리를 감싸고 있었다.
마치 눈부시게 비추는 작은 스포트라이트 불빛을 가리는 것처럼,
마치 눈이 창문이 되어 땅속 깊은 곳에 있는 무언가를 본 것처럼."  
p18


스밀라는 이웃에 사는 수리공과 함께 이사야의 죽음에 대한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하는데,
이사야의 집에서 발견한 편지와 이사야가 감춰뒀던 녹음 테이프 등을 단서로
과거 이사야의 아버지가 '빙정석 주식회사'라는 곳에서 내보냈던 어떤 탐사 중에 사망했고,
거기에 숨어있는 어떤 음모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판단한다.


"이제 나의 목적은 이사야가 왜 죽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애의 죽음에 대한 미약하지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조망하는 것."  
p454


스밀라가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분투하는 모습은 처절하기 그지없다.
그녀는 여러번 죽음의 고비를 넘기면서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데,
그 과정에서 머리에 화상을 입고, 두들겨맞고, 온몸이 찢기고, 피멍이 들고,,,
그야말로 너덜너덜한 몸이 되어서야 진실을 밝혀낸다.

눈 덮인 추운 코펜하겐과, 겨울바다 위를 항해하는 배와, 그리고 북극의 얼음 위를 거치며,
눈과 얼음과 추위를 아주 환상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러한 요소들 덕분에,
스밀라의 무섭고 위험하고 구질구질한 이 여정은 신기하게도 아름답게 읽힌다. 
아, 그나저나 이거 여름에 읽길 정말 잘 했어~ 겨울에 읽었으면 온몸이 시렸을 거야...^^;;;

스밀라라는 캐릭터도 굉장히 오묘하고 매력적인데, 머라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다.
어딘지 냉소적이고 우울하며 슬프고 불온한 듯한...? -_-;;;;
그리고 스밀라와 말더듬이 수리공의 로맨스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중 하나.
이것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슴 한 구석을 살짝 죄는 듯 하면서 느낌 참 묘하다니까~ㅋ


"탁자 너머로 나는 그의 턱 옆을 어루만지며 삶이 갑자기 우리에게 완벽한 타인과 함께
행복과 희열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에 대해서 경탄했다."   
p277


페터 회의 다방면에 걸친 지식에도 감탄하며 읽었는데,
저자 소개를 보니 무용수, 배우, 선원, 펜싱 선수, 등산가 등 다양한 경력의 소유자다.
소설 후반부에서는 겨울바다를 항해하는 배 위에서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배의 모습에 대한 묘사도 무지 상세하다.
근데 솔직히 난 이쪽으로 무지해서, 읽어도 절대 배의 풍경이 그려지진 않더라마는...^^;;;




암튼 줄거리만 놓고 보자면야 추리소설임이 분명하지만 이건 단순한 추리소설을 넘어선다.
스토리만큼이나 가득 들어차있는 스밀라의 삶과 세상 만물에 대한 사유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책의 분량을 확 늘여놓는다.
물론 이 때문에 책이 더디 읽히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설을 매혹적으로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읽다가 왠지 눈에 밟혀서 여러번 반복해서 읽은 문장들 몇 개를 옮겨볼까?



 "이해하고 싶다는 것은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고자 하는 시도다."   p55


 "나는 피할 수 없는 진실을 대면하지 못하게 할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린애들도 자라서 다른 사람들과 짐을 나누어 져야만 하는 것이다."   p70


 "나는 그 애에게 결코 아무것도 약속한 적이 없었다. 아무것도 약속할 수 없었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에게 어떤 약속도 할 수 없다."  
p71


"폭력에 있어서 언제나 신체적으로 강한 사람들이 더 유리하다는
잘못된 생각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다. 그 말은 옳지 않다.
싸움의 결과는 처음 몇 미터 내에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는가에 달려 있다."
   p123
 

 " "아버지는 대부분의 경우 너무 똑똑하지 않고
적당히 똑똑한 사람들이 교수가 된다고 말하더군요."

"그럼 너무 똑똑한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

"아버지 말로는 그런 사람들은 별로 날아가거나 개집으로 떨어지는 법이라고 했어요." " 
  p182


 "내가 알츠하이머에 걸렸다고 말해둬야겠네. (......)
새로운 하루가 시작될 때마다 내 두뇌 껍질이 벗겨져나가고 있네. 주님께 감사드려야겠지.
곧 나를 포함해 자기 자신을 배신했던 모든 사람들을 기억하지 못하게 될 테니까."  
p274


 " "사람이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스밀라?"

"사소한 부분은요. 하지만 커다란 일들은 저절로 일어나죠." "  
p283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떠나고 돌아와야 할 집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피난민이고, 망명자며, 키비토크다."  
p396


 "죽음이 나쁜 것은 미래를 바꿔놓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를 기억과 함께 외로이 남겨놓기 때문이다."
   p415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나는 자발적으로 어떠한 한계를 선택하게 되었다.
나에겐 다시 한번 시작할 에너지가 없다.
새로운 기술을 배우거나 내 개성과 싸우거나 디젤 엔진을 이해하거나 하는 일을."  
p430


 "나는 사랑에 빠진 적이 없다. 그러기에는 지나치게 명확하게 사물을 바라본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광기의 한 형태다.
증오, 냉담, 분노, 중독, 자살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p442


 "어린 시절 나는 가끔 모든 사람이 죽고 나 혼자 뒤에 남아,
버려진 어른의 세계에서 선택의 자유에 도취되는 꿈을 꾸곤 했었다.
언제나 그게 즐거운 꿈이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 순간, 이 광장에서, 그건 언제나 악몽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p497


 "가장 중요한 정보는 언제나 맨 끝에 온다.
지나가는 말처럼, 곁가지처럼, 남는 여백에다 쓴 것처럼."  
p508


 "인생이 복잡해지는 것은 우리가 선택을 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떠밀리는 사람은 단순하게 산다."  
p509


 "사랑은 여유가 있을 때 솟아오른다. 원초적 본능으로 줄어들어버렸을 때는 사라진다.
굶주림, 잠, 안전에 대한 갈망이 강해질 때는."
   p553



몇 개만 적어본다는 게 옮기다 보니 이케 많아져버렸....^^;;;;

암튼 자칫 이야기를 지루하게 만들기도 하는 스밀라의(사실은 작가의) 수많은 사유와 독백들은
이야기와 맞물려서 생각보다 훨씬 그럴 듯하게 다가온다.
그 문장들의 얼마간은 흘려보내지고 얼마간은 눈에 박힐 테지만,
아마도 이 나뉨은 시간이 지나 소설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롭게 바뀔 것이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음.. 뭐지, 이 감성적인 마무리는...ㅋㅋ)


"사물의 진정한 실체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사람들이 뭘 믿는가야."  
p608



* 책 자세히 보기는 아래 해당 이미지 클릭!!






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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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포화소그로 2010.06.27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호~ 이제 곧 100번째 포스팅이 되는군요?
    예전부터 지켜보던터라 100번째 포스팅이 더더욱 궁금해지네요...
    설마 100번째 포스팅을 그냥 묻어가시진 않겠죠 ㅡㅡ ㅋㅋ

    • 블랑블랑 2010.06.27 17: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글고 보니 그렇네요~ㅎ
      100편 결산 같은 거 해야 할 것 같지만,
      아쉽게도 며칠전 97편일 때 결산을 해버려 가지고...ㅠㅠ
      http://animana.tistory.com/entry/책-리뷰-총결산-BEST-20
      쫌만 기다렸다가 100편 채워서 할 거를 말이죠~
      왜 그땐 그 생각을 못 했을 까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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