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학기>  /  지은이 : 기리노 나쓰오  /  옮긴이 : 김수현  /  황금가지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을 너무 인상깊게 읽어서 그녀의 작품을 두 권 더 구입했었는데
그 중에서 며칠 전에 먼저 읽은 <잔학기>다. ('아웃' 리뷰는 요기 클릭.)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 탓인지, 아님 <아웃>의 포스가 너무 강렬했던 탓인지,
암튼 기대보다는 약간 미흡한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실망할 정도라는 건 절대 아니다!)
만약 <아웃>보다 요걸 먼저 읽었더라면, 지금처럼 열렬한 팬이 되진 않았을지도...
그러고 보면 어떤 작품을 먼저 접하느냐가 그 작가에 대한 호불호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하니,
이것도 다 그 작가와의 인연이지 않을까 싶다.ㅋ




35살의 여류소설가인 '나'는 10살 때 겐지라는 남자에게 유괴되어 1년간 감금되었던 경험이 있다.
'나'는 그 경험에 대해 입을 다물고 살지만, 22년의 형을 살고 나온 겐지로부터
"저를 용서해 주지 않아도 좋습니다. 저도 선생님을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라는 편지를 받고는
그 당시를 재구성한 소설 '잔학기'를 남기고 행방불명이 된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쓴 또 하나의 소설.
(어디까지가 진실인 지는 알 수 없다.)


"이미 버스 안부터 겐지의 절실한 의지가 작용하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겐지의 의지. 그것은 작고 귀여운 존재를 원한다는 호소였다.
작고 귀여운 존재라면 개라도 고양이라도 새라도 상관없었다.
실제로 공장 뒷마당에는 그것들의 시체가 묻혀 있었다.
그렇다. 또 한 명의 귀여운 작은 존재와 함께." 
  p32


사장과 두 명의 직원으로 이루어진 조그만 공장에서 일하는 젊은 노동자 겐지는
공장 2층에 딸린 자신의 방에 '나'를 감금하고 애완동물처럼 기르기 시작한다.
겐지는 '나'를 밋치라고 부르며,
점심을 가지고 오는 낮에는 무서운 아저씨로, 밤에는 같은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생활한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나'를 알몸으로 눕게 한 뒤 그 앞에서 자위를 하지만, 절대 손을 대지는 않으며,
'나'가 도망가려고 하면 폭력을 휘두르기도 하지만, 저녁에는 친구가 되어 교환일기를 쓰기도 한다.


"어른이면 추잡한 짓을 하는 거야?"
"추잡한 생각을 하니까 어른인 거야"
   p57




<아웃>처럼 스펙타클(?ㅋ)하고 긴박감 넘치는 전개를 보여주진 않지만,
조그만 방에 완전히 갇혀버린 어린 소녀의 절망과 희망이라던지,
감금 생활 중에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간인 겐지에 대한 미묘한 심리,
 이중적이고 불안정한 겐지의 모습 등이 꽤나 흥미롭다.
소설 속에서는 '나'가 구조된 뒤에, 주변의 호기심에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모습도 나오는데,
흥미진진하게 읽고 있는 내 모습도 실은 마찬가지지 않나 싶어서 왠지 씁쓸하기도 했다.
때로 인간의 호기심만큼 무섭고 진절머리나는 것도 없으니까.^^;;;

결말에서 '나'가 밝히는 진실이 나름 이 작품의 반전 부분인데,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상할 수 있는 다소 뻔한 내용이라 신선하거나 독특한 느낌은 없다.
그보다는 감금 당시 그녀가 자신을 구원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라고 믿었던,
얼굴도 모르던 옆방의 야타베에 관한 진실이야말로 진정한 반전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아웃>에 비해서는 조금 느리고 진부한 듯 하지만,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고,
게다가 200페이지 정도의 짧은 중편 분량이라 금방 읽힌다.
기대했던 것보다 조금 모자라긴 했으나, 절망적인 인물들의 심리 묘사는 여전히 매력적이고,
나는 여전히 '기리노 나쓰오'의 팬이다.^^*


"불합리한 경험을 겪었던 아이는 반드시 뭔가로
정신의 결함이나 마음의 상처를 메우려는 일을 시도하지. 아닌가?
그래서 결함은 오히려 멋진 거야. 그러지 않으면 살아남아 어른이 된다는 건 불가능해."  
p193



* '기리노 나쓰오' 책 모음!!




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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