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  지은이 : 헤르타 뮐러  /  옮긴이 : 박경희  /  문학동네




그저껜가 앞부분 몇 장 읽어보고는,
아까 자기 전에 조금 더 읽어볼까 하고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펴들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드는 생각... 이거 정말 소설 맞아?^^;;;

띠지에 적힌 '언어로 만든 예술품'이라는 글귀는 사실이어서, 문장 하나하나가 그야말로 예술~
인상적인 문장에 포스트잇을 한 장씩 붙이며 읽다가 몇 십페이지쯤인가 그만 둬 버렸다.
차라리 인상적이지 않은 구절을 표시하는 게 더 빠를 지경...;;;
'이차대전 후 루마니아에서 소련 강제수용소로 이송된 열일곱 살 독일 소년의 삶을
충격적이고 강렬한 시적 언어로 그려냈다.'
는 설명처럼,
엄청난 은유와 비유와 상징들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작품이다.




"그녀는 나흘 동안 이웃집 정원의 헛간 뒤에 구덩이를 파고 숨어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눈이 왔고, 집과 헛간과 구덩이를 오간 발자국이 남김없이 드러났다.
그녀의 어머니는 더는 남몰래 음식을 날라줄 수 없게 되었다. 온 정원에 발자국 천지였다.
눈이 그녀를 밀고했다.
그녀는 숨어 있던 곳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와야 했다.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절대 눈을 용서하지 않을 거야. 그녀가 말했다.
(...중략...)
눈은 마치 떠났던 고향을 찾아온 듯 반갑게 왔지만 알고 보니 러시아인들의 종노릇을 한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것도 눈이 배신했기 때문이야, 트루디 펠리칸이 말했다."  
p20-21


며칠을 구덩이 속에 숨어있다가, 쌓인 눈에 찍힌 발자국 때문에 발각된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을 어쩜 이처럼 인상적이고도 몽환적으로 표현해낼 수 있는지...


"열차가 아직 루마니아에 있을 때, 털을 뽑힌 염소가 세로 두 도막으로 잘려 열차 안으로 던져졌다.
꽝꽝 언 염소가 바닥에 나뒹굴었다.
우리는 첫번째 염소를 땔감으로 썼다. 염소를 장작처럼 부수어 불을 지폈다.
어찌나 여위었던지 냄새조차 풍기지 않고 잘 탔다.
두번째 염소를 보고는 실온에서 건조시켜 먹는 파스트라마 고기라고들 했다.
우리는 두번째 염소도 불에 던져 넣고 웃었다.
두번째 염소도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앙상했고 뼈는 겁에 질린 듯 푸르스름한 빛을 띠었다.
우리는 너무 이르게 웃었고, 자비로운 루마니아의 염소 두 마리를 불손하게도 조롱했다.
(...중략...)
머지않아 사나운 굶주림이 덤벼들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지 못했다.
그 이후 오 년 동안, 배고픈 천사가 찾아왔을 때
우리는 얼마나 자주 그 푸르스름한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가.
그리고 얼마나 자주 그 염소들을 애도하였던가."
   p22-23


살벌하지만 관련없어 보이던 풍경 하나를 끌어옴으로써,
이처럼 효과적으로 현재의 처참함을 표현해낼 수 있는지....


"살이 빠지면 뼈는 천근만근이 되어 사람을 바닥으로 끌어내린다.
점호 시간에는 부동자세로 서서 나를 잊는 연습을 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크지 않아야 했다. 고개를 들지 않고 눈만 치켜떴다.
그리고 하늘을 보며 내 뼈를 걸어둘 만한 구름자락을 찾았다.
나를 잊고 하늘의 옷걸이를 찾으면 그것이 나를 지탱해주었다.
구름이 없는 날도 잦았다.
(...중략...)
그런 날은 하늘이 내 흰자위를 뒤집었고 점호는 그걸 다시 뒤집었다.
걸릴 곳이 없는 뼈들은 오로지 나한테만 걸렸다."  
p30-31


아, 굶주림으로 몸 안의 모든 기운이 빠져버려 자꾸만 땅바닥으로 꺼지려는 상태를
이것보다 더 강렬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다.ㅠㅠ


"삽의 박자에 맞춰 마음속으로 이 말을 되뇌었다. 너는 돌아올 거야.
삽질을 하며 나는 다시 정신을 추슬렀고, 총에 맞아 죽기보다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배를 곯고, 추위에 떨고, 중노동을 하고 싶었다.
나는 할머니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돌아갈 거예요. 그러면서도 그 말을 부정했다.
그래요, 할머니, 하지만 그거 아세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p82-83


울분이나 고통, 슬픔, 두려움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마치 꿈이라도 꾸듯 담담히 얘기하지만,
어떤 유혈이 낭자한 표현보다도 더 강하게 와박힌다.

벌써 새벽 1시가 훨씬 넘었는데,,,,
내일부터 다시 한 주의 시작이라 이젠 정말 자야 하는데,,,,
그런데,,,,
이번 주에도 여전히 할 일이 많아서 지금 책을 덮으면 나머지를 언제 다시 읽을 수 있을지 몰라서
아까부터 책을 옆에 두고, 덮지도 못 하고, 더 읽지도 못 하고 낑낑대는 중...^^;;;;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추천목록!!

* 아래 링크를 통해 구매하시면 1%의 알라딘 추가적립금을 받으실 수 있어요~^^
(익월 15일 자동지급, 링크 도서를 포함한 해당 주문건의 총액에 대한 1%)




-- 추천 한 방 꾹! 눌러주심 안 잡아먹어효~!!! (>_<) --

Posted by 블랑블랑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gingko 2010.06.03 12: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이 글 정말 벅차게 읽고 있어요. 문장 하나하나 생생히 머리에 박히는 글은 처음이네요.

    • 블랑블랑 2010.06.03 20:1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니깐요~~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문장들이 정말 인상적이더라구요~
      여유를 갖고 한 문장, 한 문장 음미하면서 천천히 읽어야 하는 작품인 것 같아요~^^

  2. 포화소그로 2010.06.27 16: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 저도 방금 읽었는데...
    뭐랄까, 이책은 소설이라기보단 시에 가까운 문학인듯...
    정말 노벨문학상 아무나 타는거 아니구나...


10-27 18:52

최근에 달린 댓글

달력

 « |  » 2020.10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