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96일>  /  지은이 : 나타샤 캄푸쉬  /  박민숙  /  은행나무



"내가 눈을 내리깔고 그 남자를 지나쳐 가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그는 내 허리를 붙잡고 나를 번쩍 들어 올려 열려 있던 차 문안으로 집어넣었다.
마치 우리가 함께 연습이라도 했던 양, 연출된 장면처럼 모든 것이 한 동작에 이루어졌다.
충격의 안무."
   p44


10살이었던 나타샤는 어느날 등교길에 한 남자에게 유괴되어 그 후로 8년이라는 시간을 갇혀지낸다.
이 쇼킹한 이야기는 실제로 1998년 오스트리아에서 벌어졌던 사건이고,
이 책은 그 사건의 피해자였던 '나타샤 캄푸쉬'가 범인으로부터 탈출한 지 4년 만에 쓴 수기.

범인은 이미 자신의 집 지하에 외부에서 전혀 알 수 없는 방을 마련해놓았고,
그녀는 유괴된 날부터 그 지하방에서 생활하게 된다.
처음에 범인은 아직 어린이인 나타샤를 나름 돌봐주고 그녀의 요구를 들어준다.
그녀는 그 방에서 범인이 사다주는 음식들을 먹고,
그가 갖다주는 책과 녹화된 TV 시리즈 등을 보며 공포와 절망을 이겨낸다.
범인은 그녀의 요청에 따라 그리그리기 재료라든가, 학습용 컴퓨터를 사다주기도 한다.

그리고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좁은 지하방에서
범인이 맞춰둔 시간에 자동으로 켜지고 꺼지는 전구불빛에 의존해 생활하는 나타샤는
차차 범인을 자신과 외부를 연결해주는 일종의 탯줄과도 같은 존재로까지 여기게 된다.

갑자기 범인이 밖에서 사고라도 당하면
자신은 그 콘크리트 지하방에서 홀로 죽어갈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공포에 시달리고,
그것은 범인이 지하방의 문을 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안도감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아이였고, 혼자였고, 숨을 죄는 듯한 외로움에서 나를 구해 줄 유일한 사람은
바로 나를 이 외로움에 빠뜨린 그 사람이었다."  
p68




그러나 나타샤가 성장해가면서, 정신적으로 불안정했던 범인의 이상행동은 수위를 넘어선다.

범인은 가끔 나타샤를 위로 데리고 나가 바깥공기와 햇빛을 쬘 수 있도록 해주고,
나중에는 아예 그녀에게 집안일과 집수리일을 시키는데,
늘 그녀가 도망갈까 봐 두려워하며 그녀를 더욱 자신의 통치 아래 꽉 묶어두려 하고,
이것은 그녀에 대한 삼엄한 감시와 폭력으로 이어진다.


"2005년 8월 23일, 최소한 얼굴을 60번 이상 때림.
열 번에서 열 다섯 번 주먹으로 머리를 때려 속이 메슥거림.
손바닥으로 머리를 인정사정없이 네 번 때림.
분에 못 이겨 오른쪽 귀와 턱을 주먹으로 때려서 귀가 까맣게 멍듦.
턱이 삐끗거릴 정도로 세게 어퍼컷을 날림.
정강이나 엉덩이를 무릎으로 70번 정도 걷어참.
꼬리뼈와 척추, 갈비뼈, 명치를 주먹으로 때림.
빗자루로 왼쪽 팔꿈치와 손목, 오른쪽 팔을 때려 멍이 듦.
불이 번쩍 보일 정도로 눈을 네 번 때림. 기타 등등."  
p235


하지만 자신을 '주인님', 또는 '통치자'라고 부르길 강요하는 범인에게 나타샤는 끝까지 저항한다.
갑자기 무릎을 꿇으라는 명령에도 따르지 않아서 끔찍한 폭행을 당하지만
그녀는 그것이 자신이 지켜야 할 한계선이라고 믿는다.


"때로는 굴복해 버리는 게 더 수월할 수도 있었다.
그러면 적어도 덜 맞거나 덜 걷어차였을 테니까.
그러나 완전히 억압당하고 범인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도
흥정할 수 있는 마지막 여지는 남겨놓아야 했다." 
  p193


나타샤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꾸준히 기록했고,
그 메모들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아주 작은 긍정적인 일들이 끔찍한 일들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걸 막기 위함이다.
원래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놓고도 세월이 흐르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미화되지 않던가.
그녀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언제나 냉정한 시각으로 바라보길 원한다는 뜻이겠지.



당시 범인이었던 '볼프강 프리클로필'.


굶주림과 폭행과 노동에 시달린 오랜 감금 세월 동안
뚱뚱한 아이였던 나타샤는 비쩍 마르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완전히 지쳐버린다.
몇 번인가의 탈출기회를 맥없이 흘려버리고 그렇게 18살을 맞은 나타샤는
어느날 또 다른 기회를 잡고 드디어 탈출에 성공한다.

하지만 에필로그에 덧붙여진 그 후의 이야기는 그녀의 감옥이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었음을 보여준다.
언론은 '끔찍한 진실만으로는 충분히 끔찍하지 않은 듯(p291)'
점점 더 기상천외한 추측들을 보도하기 시작했고,
그녀에게 값싼 동정을 베풀던 사람들은 그녀가 그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원칙대로 살기를 원하자,
곧 미움과 시기, 그리고 노골적인 증오를 드러냈다.


"이제 나는 밖에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일어설 수 없고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한 무너진 인간의 모습을 보고 싶어 했다.
내 남은 인생을 위해 카인의 징표를 거부하는 순간, 분위기가 돌변했다."  
p294


그리고 무엇보다 사람들은, 그녀로써는 자신을 괴롭히던 자로부터 해방된 것과 동시에,
오랜 세월 동안 그녀 곁에 있던 유일한 한 사람을 잃은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것을 단지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일축해버리는 사람들의 반응에 그녀는 동의할 수 없었다.


"도망칠 수 없기에 함께 지낼 수밖에 없는 범인에게도 좋은 점을 발견하려고 노력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만들기를 할 수 있게 그가 도와주고,
잘 되지 않을 때는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그가 용기를 북돋아주던 그런 순간들도 있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소중히 생각한다.
그가 내 공부를 도와주고 어려운 계산문제를 직접 내주었던 순간,
내가 쓴 작문을 봐주고 문법과 맞춤법이 틀렸을때는
반가운 얼굴로 빨간 색연필을 잽싸게 꺼내들던 순간들, 거기에 그가 있었다." 
  p201




이것은 끔찍한 사건의 범죄자와 피해자에 관한 심리학 책이기도 하면서,
완전한 절망 속에서 자신을 지켜낸 한 인간의 승리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는,
그런 경험을 이용해 돈과 유명세를 얻으려는 목적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했으나,
나는 이제 그녀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그녀가 세상의 모든 억측과 오해에 대해 자신을 변호하고,
진정한 자유를 얻기 위해 이 고단한 이야기를 써내려갔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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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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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태랑 짜오기 2011.10.25 19:5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3096일 한번 읽어 봐야 겠네요
    8년간 지하방에서 갖혀 지내다니...
    즐거운 시간되세요

  2. 아레아디 2011.10.26 0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책 한권 추천받고 갑니다~
    행복한 저녁시간 되세요^^

  3. 별이~ 2011.10.26 00: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실제 있었던 이야기 이군요. 무서운걸요...
    왠지 올드보이도 생각나구요...^^ 잘보고가요^^
    하루 마무리 잘하시고, 좋은꿈 꾸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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