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집 '코끼리를 쏘다'에 수록된 표제작 '코끼리를 쏘다'를 읽게 됐는데
코끼리가 죽는 장면이 굉장히 강렬해서 옮겨본다.
오웰 자신이 식민지 경찰로 복무했을 때의 실제 체험을 적은 것이라고 한다.

고통 속에서도 좀처럼 죽지 않지만, 다시 살리기에는 이미 늦어버린 생물을 보는 것은 괴롭다.
그렇다고 고통 받는 채로 저절로 죽을 때까지 버려 두는 것도 괴롭기는 마찬가지다.
난 어릴 때 개미같이 조그만 벌레를 죽일 때도 그런 느낌을 받곤 했는데,
아무리 아무리 눌러도, 죽지 않고 계속 꿈틀거리면 진땀이 나고 목이 따끔따끔했었다.
요즘은 혹시 개미를 보면 걍 후~하고 불어서 다른 데로 날려버리거나
조금 큰 벌레들은 책받침같은 걸로 떠서 창 밖에 버린다^^;;;
(근데 내가 사는 아파트 층수가 높은 편이라 지금은 벌레 볼 일이 거의 없다.ㅋ)

암튼 오웰의 표현능력이 탁월한 탓인지,
아래 부분을 읽는 동안 왠지 진땀이 나고 목이 따끔따끔한 느낌이었다.


 

방아쇠를 당겼을 때, 나는 총소리도 듣지 못했고 충격도 없었다. 명중할 때는 아무것도 못 느끼는 법이다. 그러나 군중이 토해내는 악마와 같은 외침을 들었다. 총알이 코끼리에 명중되는 데 걸리는 것보다도 짧은 순간에 이상하고도 무서운 변화가 코끼리의 전신을 엄습했다. 놈은 쓰러지지도 않았고 꿈쩍도 하지 않았는데, 몸뚱이의 모든 윤곽선이 변해갔다. 놈은 갑자기 얻어맞은 충격에 한없이 오그라들고 노쇠해 버린 것이다. 마치 총탄의 무서운 충격이 그를 넘어뜨리지 않고 그대로 마비시켜 버린 것 같았다. 한참 후라고 생각되는데-사실은 5초 정도 되었을 것이다-마침내 코끼리는 흐느적거리다가 무릎을 꿇었다. 놈의 입에서 침이 흘러내렸다. 무시무시한 노쇠가 그를 집어삼킨 것같이 보였다. 수천 살의 나이를 먹은 것 같아 보였다. 나는 다시 한 번 같은 곳을 쏘았다. 두 방을 맞고도 놈은 아주 쓰러지지 않았고, 머리를 축 떨군 채 비틀거리며 필사의 힘을 다해 서서히 다리를 펴고 일어섰다. 세번째로 총을 쏘았다. 그 한 방이 모든 것을 끝냈다. 그 고통이 전신을 흔들어 사지의 마지막 남은 힘까지 다 소진된 것을 뚜렷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쓰러지면서 한순간 일어날 듯하더니 뒷다리가 몸뚱이에 깔려 무너지자, 상체는 넘어지는 큰 바위처럼 솟아오르고 코는 한 그루 나무같이 하늘로 치솟았다. 코끼리는 처음으로 단 한 번 포효하고는 배를 내 쪽으로 향하고 내가 엎드려 있는 땅을 뒤흔들듯 '쿵'하고 쓰러졌다.

나는 일어섰다. 이미 버마인들은 내 옆을 스쳐 지나 진흙탕으로 뛰기 시작했다. 코끼리는 다시 일어나지 못할 것은 분명했지만, 아직 죽지 않았다. 산더미 같은 옆구리가 고통스럽게 기복을 그리면서 율동적으로 길게 헐떡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놈은 입을 딱 벌렸다. 창백해진 연분홍빛 목구멍의 동굴이 들여다보였다. 나는 오랫동안 그가 죽기를 기다렸지만, 숨소리는 가늘어지지 않았다. 결국 나는 심장이라고 생각되는 곳에 남은 두 발을 발사했다. 뻑뻑한 피가 붉은 벨벳처럼 솟아나왔지만, 여전히 숨은 끊어지지 않았다. 총알을 맞고 꿈쩍도 하지 않았고, 거친 숨결만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놈은 엄청난 고통 속에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총탄도 더는 상처를 줄 수 없는, 동떨어진 아득한 또 하나의 세계 속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 무서운 신음 소리를 그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움직일 힘도 없고, 그렇다고 죽을 힘도 없이 축 늘어져 누워 있는 거대한 동물을 보면서 완전히 죽여버리지 못하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나는 내 소총을 가져오게 하여 그의 심장과 목덜미 밑을 연발로 쏴버렸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었다. 고통을 못 참아 헐떡거리는 소리가 벽시계의 똑딱거리는 소리처럼 지속되었다.


- 조지 오웰 '코끼리를 쏘다'(실천문학사) 中 -







Posted by 블랑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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